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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대표팀이 우여곡절 끝에 2018 러시아 월드컵의 본선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과정부터 결과까지 하나같이 불만족스럽다는 분들이 많은데, 경기력 부진으로 경질된 슈틸리케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한 신태용 감독 역시 팀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대표팀의 체질개선을 이뤄내는덴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런 가운데, 축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할 뉴스가 얼마전에 발표되어 관심을 모았죠.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거스 히딩크 감독이 우리나라 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비록 본인피셜이 아닌, 히딩크 재단 사무총장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이지만, 영향력은 상당했습니다. 가뜩이나 어수선한 대표팀을 다잡아 줄 최적의 적임자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졌고, 많은 언론들도 촉각을 곤두세웠죠.
논란이 커지자 대한축구협회가 직접 진화에 나서면서 히딩크 감독의 부임설은 해프닝으로 끝이 났지만, 인터넷공간 누리꾼들의 "히딩크를 감독으로 다시 모셔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들을 아직도 적지않게 볼 수는데요,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은 왜 히딩크에 열광하는 걸까요? 단순히 2002년 4강 신화의 주역이라는 이유 때문일까? 두말 하면 입 아픈 히딩크 감독의 주요 경력을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감독 데뷔하자마자 트레블… 전설의 시작, PSV 아인트호벤
축구선수로서는 매우 미미한 커리어로 은퇴한 히딩크는 은퇴 후 1982년 데 그라프샤프에서 수석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년 후인, 1984년에는 네덜란드의 명문 PSV 아인트호벤 수석코치로 부임하죠. 그러다 1986~87 시즌 도중, 팀 사정으로 인해 급작스레 감독 대행을 맡게 됐지만 곧 바로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히딩크 매직’의 서막을 알리게 됩니다.
이후 정식감독으로 취임한 1987~88시즌에서는 리그와 KNVB컵,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 격인 유러피언컵을 모두 우승함으로써 유러피언 트레블을 달성하게 되는데, 참고로 유러피언 트레블을 이룬 축구 감독은 알렉스 퍼거슨과 펩 과르디올라, 조제 무리뉴 등 8명에 불과하며, 히딩크가 그 중 한명에 속합니다.
--- 네덜란드 대표팀 취임… 4강 징크스의 시작
1994년 12월,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히딩크는 뤼트 굴리트, 레이카르트 등의 레전드급 선수들의 은퇴 이후 세대교체가 필요한 상황에서 대표팀 기강을 다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히딩크는 몇몇 선수들한테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걸 그만둬야 한다.”라고 항명했던 에드가 다비즈를 유로 1996 대회 도중에 쫓아낸 걸 들 수 있기도 합니다.
비록 유로 96에서는 8강에서 탈락했지만,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뤄냈다는 평가 속에 98 프랑스월드컵에서는 당당히 4강 진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5:0 참패의 굴욕을 안긴 감독으로도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지요.
--- 위기에 몰린 히딩크, 대한민국을 맡다
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전세계 최고 클럽으로 꼽히는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부임한 히딩크는 성적 부진과 구단 수뇌부와의 마찰 등으로 인해 일곱 달 만에 경질 당하게 됩니다. 그의 감독 커리어에서 첫 번째 흑역사로 꼽히는데, 이후 강등위기에 몰린 레알 베티스의 소방수로 투입됐으나 1승 6무 6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한 채 경질 당하고 맙니다.. 팀은 그 해 2부리그로 강등 당하게 된다는…
어떻게 보면 감독 생활이 끝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지만, 때마침 동반 추락을 겪고 있던 우리나라 대표팀과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그의 인생 처음으로 아시아 팀을 맡게 됩니다. 당시 히딩크가 우리나라 대표팀을 맡은 이유는 네달란드 고향사람들 중 한국전에 참전한 용사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한국감독을 한번 맡아보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라고…
--- 오대영 오명에서 국민영웅이 되기까지
2001년 5월 컨페더레이션스 컵에서 프랑스에게 0:5 패배, 같은 해 8월 체코와의 평가전에서도 0:5 패배… 두 번의 패배로 인해 히딩크는 ‘오대영’, ‘국민역적’, ‘네덜란드 사기꾼’이라는 온갖 오명을 뒤집어써야만 했습니다.
당시, 국내 축구인들 중 상당수는 ‘쓸모없는 평가전은 그만 하고 단체 합숙하며 조직력을 키워야 한다'는 논리로 대표팀을 맹비난했는데, 정작 히딩크는 "강호에게 크게 진다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다. 당신들은 대한민국 축구를 굉장히 수준 높다고 멋대로 착각하고 있다."며 맞받아쳤고, 이로 인해 각종 국내 언론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1년 후… 2002년, 마침내 동방의 작은 나라를 월드컵에서 일약 세계 4위로 끌어올려,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받게 되며 동상 건립은 물론이거니와 명예국민으로까지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 PSV 4강 신화 + 2006년 월드컵에서 정의구현
2002 월드컵 이후, 고향 팀인 PSV 아인트호벤 감독으로 취임한 히딩크는 04~05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4강에 올려놓아 축구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4강 징크스 재현… 당시 박지성-이영표 듀오를 영입하며 친한파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2006년 월드컵 때엔 호주대표팀을 맡게 되는데, 당시 같은 조였던 일본을 3:1로 완파하며 국내 축구팬들로 하여금 ‘정의구현’, ‘역시 한국인’ 이라는 찬사를 얻기도 했다. 호주 대표팀이 16강에 올라간 건 덤… 우승팀 이탈리아와 호각을 다툰 것 역시 덤…
--- 로만과 손잡은 히딩크… 러시아‧첼시도 4강
첼시 구단주이자 석유재벌로 알려진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구애 끝에 러시아 대표팀을 맡은 히딩크는 2008년 유로대회에서도 러시아를 4강에 진출시킵니다. 이쯤 되면 4강성애자라 불릴 만도 한데, 이후 스콜라리의 삽질과 기강 해이 등으로 인해 망조의 길을 걷던 첼시를 맡아서도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올려놓는데 성공하며 4강 성애자의 입지를 굳히게 되고 그 해 잉글랜드 FA컵 우승 또한 이뤄내게 됩니다.
단, 가장 최근에 맡았던 네덜란드 대표팀을 시원하게 말아먹어 오점을 남겼다는 지적을 받고 있지만, 현존하는 어느 감독보다도 훌륭한 커리어를 기록한 만큼, 히딩크의 재부임설은 축구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고 봅니다. 특히 2002년의 월드컵을 보고 그때의 감동을 몸으로 직접 느꼈던 세대라면 더욱더 말이죠.
비록 재부임 가능성은 사라졌지만, 기술고문이나 자문 등 외곽에서 대표팀을 지원할 가능성이든 아니면 아예 다른 국가대표팀을 맡아 우리나라와 진검승부를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어떤 쪽이던 간에,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는 히딩크의 행보는 앞으로도 한국 축구팬들 관심사의 빅이슈중 하나가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결국 벤투감독이 이번에 새로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며 코스타리카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앞으로 히딩크감독 못지않은 외국인감독 열풍을 기대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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